[성경칼럼] 야곱 이야기


이삭이 야곱을 불러,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허락된 복을 기도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축복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잘 살고, 번성하고, 성공하는 것만 생각했다. 오늘은 다르게 보인다. 바울 형이 알려준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김을 받았다. 믿음의 씨앗,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그 중심이 가장 중요하다. 이삭도 큰 사건을 겪고, 자신의 어린 시절 모리야 사건의 기억을 떠올렸을까? 자신이 어떤 은혜를 받은 것인지 알았던 것일까? 아버지를 오해한 마음을 진정 풀었던 것일까? 이삭은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은혜, 아내의 축복을 야곱에게 빌어줬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지 않았으나, 이삭은 야곱을 보낸다. 아브라함은 겪어본 경험이 있으니 결코 그곳에 보내지 않았으나, 이삭은 경험이 없고, 단지 아내를 신뢰하므로 그곳에 보낸 것일까? 야곱을 향한 이삭의 축복은 전능자 하나님께 방점이 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계보,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믿음의 유산이 이렇게 전해진다. 이것이 믿음의 상속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모두 자녀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세 아들이다.

에서는 집에 거주하면서 현실을 봤다. 야곱은 집을 떠나, 꿈에 하나님을 봤다. 떠나는 자, 광야를 걷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야곱이 받은 축복,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의 축복!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했다. 아버지가 자식을 양육할 때,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길 포기하고, 아버지의 권리를 전능자 하나님께 이양할 때,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신다. 양육권 포기가 자식을 하나님께 돌린다. 전능자 하나님이 비로소 야곱을 아들로 삼았다. 꿈에 본즉,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의 영적 탄생이 이 때부터 시작됐다.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난 날, 벧엘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함께 사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고, 야곱에게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7년이 며칠같았다. 월급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 기쁜 것은 사랑이다. 라헬을 향한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의 출처는 성령이다. 성령이 오지 않으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한계의 벽에 부딪힌다. 한계가 없는 사랑이 되려면, 말씀밖에 없다. 야곱이 처음 라헬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듯, 야곱과 라헬이 우물가 옆에서 만나고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격적으로, 은밀하게,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는 자는 이런 축복을 누린다.

큰 돌이 우물을 덮고 있고, 목자들이 와서 그 돌을 옮기면, 비로소 양들에게 물을 먹였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줄까?” 예수님 무덤앞에서 여인들이 간구했던 내용이다. 그때 천사들이 큰 돌을 굴려냈다. 아멘! 죽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사망의 우물이 열렸다. 기독교는 죽음의 물, 죽음의 떡을 먹는다. 십자가는 열린 무덤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다. 죽음 곧 종말의 맛을 즐기는 자가 참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오늘 이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무덤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물을 보았고, 죽음을 가까이하는 자가 부활을 진정 알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라반이 야곱을 향해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라고 고백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 말한 “내 뻐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란 표현과 같다. 혈육관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실로 삶의 DNA, 방법의 DNA, 가치관의 DNA가 일치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속여 빼앗는 특질이 참으로 라반과 야곱이 닮았다. 라반은 야곱의 거울이며, 야곱은 라반의 거울이다. 야곱은 믿음의 DNA가 없고, 오히려 어머니 혈액을 이어받아, 세상방식으로 사는 자였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는 하나님의 인격을 본다. 나와 야곱은 이런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라헬과 야곱, 야곱과 라반의 만남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하나님은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실 뿐이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레아는 야곱을 사랑하는 속에서 어떻게 레아와 야곱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 숙제를 푼 것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뜻이 깨질 때 들통난다. 하나님은 깨뜨리는 분이다. 망치를 들고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을 유리파편처럼 산산히 부순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겼으나, 그 꿈이 깨졌다.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에 있었다. 침묵하는 하나님은 조용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시니, 깨어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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