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텅빈 무덤


예수님 시체가 사라졌다. 막달라 마리아는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두 제자가 달음질해서 가보니, 예수님 시체가 없고, 세마포와 머리를 감싼 붕대만 각각 따로 놓여 있었다. 두 제자는 집에 갔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속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슬피 울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말을 걸었고, 예수님도 곁에서 마리아를 불렀다. 아멘!

주님이 느껴지다가, 느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가? 두 제자는 예수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보고, 집에 갔다. 그러나 마리아는 슬피 울었다. 내 마음 속에 주님이 계시는지, 계시지 않는지, 무덤덤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결혼한 부부가 남편이 퇴근하든지, 출근하든지, 투명인간처럼 산다면, 그 부부는 부부일까? 무덤속이 텅빈 듯한 그 공허, 주님이 계시지 않는 허탈감, 그때 마리아처럼 슬피 울며 주님을 찾는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주님이 즉시 찾아오신다.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안을 자세히 살폈다. 내 마음속을 그렇게 자세히 살펴야 한다. 마음이 지성소인데,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님이 보이지 않으면 울어야 한다. 주님이 오셨는지, 가셨는지, 아무런 느낌도 없다면 그것은 주님께 무관심한 것이다. 계시록에서 주님이 문을 두드린 것은 실제 사건이다. 그 소리를 듣고 영접하면 주님이 함께 먹고 마신다.

자녀가 등교했다가 집에 오고, 아내가 시장에 갔다가 반찬을 사서 돌아오고,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갔다가 집에 오는 것을 가족이 아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 찾아 엉엉 우는데, 어떻게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는지, 아닌지를 모를 수 있는가? 이것은 지식이 아니고, 실제다. 무덤속에 주님의 시체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무덤 밖에서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 마리아를 부른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주님은 내 이름을 부르신다. “창훈아!”

살아나신 후,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 곳이 주님이 나타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옥신각신 논의했을 것이다. 그때 주님은 “샬롬”이라고 나타났다. 사라진 시체가 살아나서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내 죄요, 내 허물이다. 나 때문에 주님이 찔리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뛸듯이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아멘! 내 죄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 길을 가셨고, 살아나셨으니,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숨결이 성령이다. 성령을 날마다 받고, 성령으로 기도해야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 아멘! 제자들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몇번씩 확인한 사실인데, 시체가 도굴된 줄로 알았던 제자들이 더 이상 예수님 시신을 찾지 않았다.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도마를 알았다. 주님은 나를 아신다. 나의 의심까지 주님은 모두 아신다. 의심많은 도마의 질문을 듣고 계셨듯, 주님은 나를 아시고, 매일 내 집에 찾아 오신다. 아멘! 내 마음을 노크하시는 주님! 주님은 아픈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셨다. 성도의 교제도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손자국과 창자국을 허물없이 보여줄 수 있다면, 그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상처는 그리스도의 흔적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