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탕자의 부활


나에게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성경적 비유중 하나는 ‘탕자’다. 집에서 열심히 일한 장자는 푸대접을 받고, 집을 떠나 나이트클럽 다니면서 술과 여자로 인생을 낭비한 불효자 차자는 아버지가 송아지도 잡아주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해줬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의문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떡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용기는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냐?”

마귀의 3가지 질문은 사실 조롱에 가깝다. 주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들이다. 왜냐면, 주님은 직업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양육했다. 베드로에게 돈을 벌라고 하지 않고, 그물을 버리고 따르게 하셨다. 그렇다고, 베드로에게 돈이 엄청 쏟아지는 그런 축복이 온 것도 아니다. 생존의 떡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요건이 과연 경제적 가치, 세상적 능력, 권력 등이 필요할까? 도덕적 기준은 어떤가? 도덕적 부자는 참으로 존경하고 흠모할만하다. 나는 그런 성인군자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볼 때는 탕자의 DNA가 많은지라…. 세상이 주는 것들은 어쩌면, 거추장스런 가면이 아닐까?

가면이 찢어질 때, 그것은 휘장의 찢김이다. 각자는 태어나면서 세상이 씌워준 황금가면을 얼굴로 알고 살아간다. 얼굴 위에 올려진 인식의 얼굴, 그것이 ‘페르소나’라고 한다. 사회적 얼굴, 그것이 인격이다. 인격을 갖추려고 장자는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했다. 아버지를 위해서, 또한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했을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보다는 친구들과 관계를 위해서 멀리 타국으로 떠났을 것이다. 어울려 놀았다는 것은 친구가 많았던 것이고, 그렇게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효도, 성공, 권력, 명성, 능력, 품격, 도덕적 평판… 그것이 과연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는 아들의 기준일까? 내가 도덕적으로 죄인이었을 때, 나를 위해 죄값을 대신 치르고, 내 안에 아들의 씨앗을 심어준 그 사랑, 그 은혜가 나를 새롭게 한다.

“돌이 떡이 되는 대박이 터지지 않을지라도”

“경제적 고난의 십자가가 그림자처럼 날 따라다녀도”

“세상의 부귀영화가 그림의 떡일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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