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품꾼 이야기가 나오고, 예수님의 십자가 교육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해진다. 이미 아는 고사성어처럼 ‘설교’로 들리는 십자가 사건이지만, 예수님이 직접 십자가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죽음을 직면한 주님, 놀랍게도, 3번의 반전이 연거푸 일어난다. 마치, 품꾼을 고용한 농장에서 ‘임금협상 노사분규’가 일어나듯, 예수님과 너무 동떨어진 제자들의 무능, 욕심, 그 속물근성이 ‘십자가 사건’을 빛으로 드러낸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름도 생략됐다. 세베대의 아들로 지칭되고, 권력을 원한다. 권력자들에게 짓밟혀, 죽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서 두 제자는 ‘권력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가장 높은 곳에 앉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기에, 또한 예수님의 좌편, 우편 자리가 그들의 생각과 다른 것을 알기에, 부드럽고 단호한 어조로 거절한다. 두 형제는 분명 책망을 받았건만, 실상을 모르는 나머지 열 제자들은 두 제자를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린다. 결국, 권력의지를 드러낸 두 제자, 권력의지를 속에 감춘 열 제자, 모두 한통속이다. 누구나 속물근성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이야기를 이제 다시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섬기는 자가 높고, 인자도 섬기는 종으로 대속물이 되려고 이 땅에 왔다고!!!
열두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십자가 교육을 했건만, 편가르기를 하면서 예수님의 심정은 찢어졌다. 그때, 구 맹인이 나타나,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보기’를 원한다고 간청한다. 제자들은 맹인과 예수님 사이를 막았다. 예수님을 위해서 한 제자들의 행동이 ‘주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다. 두 맹인은 눈을 떴고, 그 다음 행동이 놀랍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옆 좌석을 원했고, 열 제자는 그런 두 제자를 향해 시기질투했는데, 두 맹인은 오직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을 믿는다면, 혹여 주님의 무엇을 보고 따르는가? 주님을 사랑해서, 그 하나만으로 따르는가!!